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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도 국내 10대뉴스

구술같이 맑은 가을하늘 2008. 9. 25. 03:50

1975년도 국내 10대뉴스


1. 긴급조치 9호 선포
크메르에 이어 월남이 적화된 직후인 5월 13일 朴正熙 대통령은「국가 안보와 공공 질서의 수호를 위한」긴급조치 제9호를 선포, 유신 헌법에 대한 일체의 비방, 반대 등을 못하도록 금지했다. 긴급조치 9호는 또 유언비어의 날조 및 유포, 학생의 정치 간여와 집회 등을 금지시켰으며 이 조치 위반자에 대해서는 영장 없이 체포할 수 있도록 했다. 야당은 이 조치로 정치 활동에 큰 제약을 받기 시작, 이의 해제를 요구했으나 정부측은 이 조치가 장기화될 것이라고 거듭 천명했다


2. 東亞日報 광고 사태
「자유언론」을 표방해온 동아일보사가 광고 무더기 해약이라는 언론사상 유례없는 간난을 겪었다. 74년 12월 24일 본격화된 이 광고 무더기 해약 사태는 동아일보·동아방송 및 東亞의 모든 간행물을 상대로 7개월이나 계속되었다. 그동안「東亞」는 광고없이도 굽힘 없이 신문 ·방송·잡지를 꿋꿋이 제작했으나 극심한 경제난으로 한때 감면 발행이 불가피 했었다. 「東亞」돕기 격려광고가 쇄도한 것도 언론사에 특기할 일이었다.

 

3. 金玉仙 의원 파동
新民黨 金玉仙 의원이 10월 8일 대정부 질문 중「관제안보 궐기대회」라고 발언한 것이 與측에 의해 문제가 되어 丁一權의장이 직권으로 회부한 金의원 제명 징계안이 法司委에서 변칙처리되고, 이어 10월 13일 본회의가 열렸으나 이날 金의원이 자진 사퇴서를 제출함으로써 일단락 됐다. 이 사건을 둘러싸고 국회는 한때 태풍권에 돌입, 여야대결이 첨 예화하기도 했다. 이 사건으로 헌법에 보장된 의원의 면책특권도 사실상으로 한계를 갖게되는 결과를 가져 왔다.

 

4. 維新체제 찬반 국민투표
많은 재야인사들로 구성된 민주회복국민회의가 특히 활발하여 「민주 회복」을 요구하자 정부는 현행 헌법의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를 2월 12일에 실시했다. 그 결과 투표자 중 73%인 9백80만여명이 찬성, 국민 투표안은 가결됐다. 그러나 72년 11월의 국민투표와 비교하면 △ 투표 자 比 찬성율은 91.5%에서 73.1%로 △ 유권자 比 찬성율은 84%에서 58.3%로 각각 떨어진 결과를 나타냈다. 이 국민투표는 그후 부정 폭로 자가 나타나 후유증을 낳기도 했다

 

5. 防衛稅의 신설
북한의 남침 위협에 대비, 국방력 증강에 쓸 재원 마련을 위해 방위세가 신설되고 민방위대가 각 직장과 부락마다 창설됐다. 방위세는 7월 16일부터 소득세·재산세·광고세 등 모두 15개 세목에 부가세 또는 독립세로 부과되어 국민의 세부담은 크게 늘어났다. 민방위대는 8월 24일부터 가입의무가 부여된 17세 이상 50세 미만의 남자와 부녀지원자 등으로부터 편입신고를 받아 발족했다.

 

6. 12·19 전격 개각
여야 협조로 94회 정기국회를 무사히 끝낸 다음날인 12월 19일 朴正熙 대통령은 대폭적인 개각을 단행, 4년 반 동안 재임했던 金鍾泌 국무총리를 퇴진시키고 崔圭夏씨를 기용하는 한편 외무·내무 등 8부 장관을 경질했다. 이 개각에서 외교통이면서도 행정실무형인 崔씨가 기용됨으 로써 76년부터 한결 짙은「脫政治」속에서 안보 외교 시책에의 중점이 두드러졌다

 

7. 金大斗 사건
8월 13일부터 10월 7일까지 55일 동안 전남 광산· 무안, 경기도 평택 ·양주, 서울 등지에서 9차에 걸쳐 강도·강간·일가족 몰살 등 17명을 연쇄 살해한 金大斗(26)는 피묻은 세탁물을 맡겼다가 주인의 신고로 붙잡혀 공범과 함께 1심에서 사형이 선고됐다. 국민학교 졸업에 전과 1범인 金의 범행 동기는 취직도 못하는 등 사회에 대한 무력감, 소외의식 등으로 분석되어 우범 청소년에 대한 사회교육 교도행정의 개선 등이 문제점으로 다시 드러났다.

 

8. 朴東明 사건
6월 10일 대검 특별수사부에 구속된 시온재벌의 장남 朴東明(31. 태광실업 대표)은 26만5천달러를 불법 유출시켰다는 혐의사실보다 영화배우등 연예인들을 상대로 한 엽색행각 때문에 재벌 2세의 생태와 관련, 물의를 빚었다. 출처 不明의「朴의 엽색 상대자 28인의 명단」이 나돌아 이름이 오르내린 연예인들이 해명에 법석을 떨었고「7공자」라는 유행어를 낳기도 했다.

 

9. 남해안 밀수조직 적발
검찰은 오랜 고질인 남해안 일대 밀수를 뿌리 뽑기위해 대검 특별수사반을 파견했다. 9월 7일부터 40여일 동안 여수에서 밀수 폭력배 許奉用 등과 경찰서장·세관장을 비롯한 관련 공무 등 1백75명을 검거했다. 이 중 1백19명이 구속 기소돼 許와 朴吉煥은 1심에서 무기형을 선고받았다. 또 12월 8일부터 시작된 부산 수사에서도 14일 만에 11개파 2백 22명의 밀수범들을 구속하고 공무원 등 비호 세력 1백여명에 대한 수사를 계속했다.

 

10. 조총련계 동포 모국 방문 
조총련계 동포의 모국 방문은 1월부터 시작, 추석 성묘단으로 절정을 이루었으며 그동안 22진, 1천5백여명이 모두 30∼40여년 만에 모국을 찾아와「조국의 발전상」을 눈으로 보고 돌아갔다. 조총련은 모국방문을 하고 돌아가는 교포들이 거의 민단으로 전향하자 융자금 회수 등 갖가지 수법으로 방해 공작을 폈으나 모국을 찾겠다는 조총련계 교포들은 계속 늘어 났다. 국내에서는 각계에서 이들 교포들의 모국 방문을 돕기 위한「성금모으기 운동」이 한창이었다.